미국 철강업계는 탈탄소를 위해 고철 사용 확대 중
2022-02-16 미국 시카고무역관 배성봉
- 고철을 원료로 쓰는 전기로 생산방식 확대
- 미국 철강기업, 고철기업 인수 총력
미국 철강기업들이 철강 원재료인 고철 확보에 활발히 나서고 있다. S&P의 조사에 따르면 2019년 미국 고철 수요는 4680만 톤이었으며 향후 연간 875만 톤씩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고철 수요가 폭증하고 있는 이유는 고철을 활용한 철강 생산공정이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탄소저감 위한 전기로 생산방식 확대
철강 생산방식은 일반적으로 고로나 전기로를 활용한다. 고로를 활용한 철강 생산방식은 철광석, 석회석 등을 녹이기 위해 1,500℃의 고온이 사용된다. 공정에 필요한 에너지와 열은 주로 석탄인 화석 연료에서 나오는데 이 때문에 다량의 탄소가 배출된다는 문제점이 발생한다. 보통 1톤의 철강을 생산할 때 1.85톤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된다. 2020년 미국은 7200만 톤의 철을 생산했으며 산술상으로 1억 5000만 톤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한 것이다.
미국의 철강 생산량은 산업 호황으로 지난 1년간 20% 가량이 증가했으며, 2024년까지 미국 철강 생산량은 연간 1000만 톤씩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철 생산방식을 친환경적으로 바꾸지 못하면 막대한 양의 이산화탄소가 발생할 수 밖에 없다.
미국 철강업계는 탄소저감을 실현하기 위한 하나의 방안으로 철강 원재료로 철광석이나 석회석 대신 고철 사용 확대를 택했다. 고철은 앞서 언급한 고로가 아닌 전기로에서도 녹일 수 있으며 석탄 가열 용광로인 고로에서 철광석을 녹일 때 발생하는 탄소 배출량의 25% 수준에 불과하다. 철강산업이 온실가스 배출 주범으로 지목되면서 미국은 2002년 전기로 생산공정을 전체 생산공정의 절반 수준에서 2020년 70%까지 확대했다. 전기로 도입이 확대되면서 전기로 생산공정의 주원료인 고철 수요도 자연스레 증가하게 됐다.
미국 철강기업의 전기로 확장 사업은 지금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미국 주요 철강기업 US Steel은 최근 인수한 전기로 철강기업 Big River Steel의 연간 철강 생산량 확대를 위한 확장공사를 진행 중이다. 공사가 완료되면 해당 전기로 시설에서만 철강 생산량이 기존 160만 톤에서 330만 톤으로 2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철강의 25%를 생산하는 철강기업 Nucor도 오하이오, 펜실베이니아, 버지니아 지역에 2024년까지 전기로 공장 건설 계획을 발표했다. Steel Dynamics, CMC, North Star Bluescope 등도 전기로 확장에 돌입했다.
다만, 철강기업 입장에서 전기로 생산방식이 탄소 감축에 효과적이라 하더라도 현실적으로 모든 생산방식을 전기로로 바꿀 순 없다. 고로와 전기로는 각각 최종적으로 제작하는 철강의 종류가 다르기 때문이다. 고로 생산방식은 주로 자동차 강판, 선박 후판 및 열연, 냉연 등 판재류를 생산하고 전기로 생산방식은 봉형 강류, 철근 등을 생산한다.
고철 수요 증가, 가격 상승으로 이어져
2020년에서 2023년까지 진행되는 미국의 전기로 생산 용량 확장의 90%가 강판과 같은 평판제품 생산에 집중된다. 평판제품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깨끗하고 오염되지 않은 등급의 프라임 스크랩(Price Scrap)이 필요하다. 즉, 향후 고철 수요 증가의 상당 부분이 프라임 스크랩일 것으로 분석된다.
S&P의 추정에 따르면, 2023년에 미국의 전기로 용량 확장이 완성되면 연간 최대 370만 톤의 프라임 스크랩 수요가 추가 발생할 것이라 한다. 고철을 파쇄해 잘게 조각낸 파쇄고철(Shredded Scrap) 수요도 연간 290만 톤씩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향후 고철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고철 가격도 증가하는 추세다. 컨설팅기업 World Steel Dynamics에 따르면, 최근 고철의 평균 현물가격이 2020년 말보다 26% 가량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2021년 프라임 스크랩 가격은 톤당 540달러로 34% 가량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철강기업의 고철기업 인수 총력
미국 철강기업은 고철 구매비용을 최소화하고 안정적인 원재료 공급원을 확보하기 위한 방법으로 고철기업 인수를 택했다. 지난 10월 Nucor는 Grossman Iron and Steel과 Garden Street Iron & Metel 두 개의 미국 고철기업을 인수했다. Cleveland-Cliffs도 전기 자동차 모터, 변압기용 스테인리스강, 특수강용 고철기업 FPT(Ferrous Processing and Trading Company)를 인수했다. 이번 인수로 Cleveland-Cliffs는 기존 FPT의 미시간, 오하이오 등에 걸친 22개의 고철 공장을 소유하게 됐다. Steel Dynamics는 2020년에 멕시코 몬테레이에 소재한 Zimmer S.A. de C.V.를 인수하면서 텍사스주 새로운 철강공장에 고철을 공급하고 있다. 이번 인수로 Steel Dynamics는 기존보다 향상된 고철 처리 설비를 갖추게 됐다. 미국에 진출한 호주 철강기업 North Star Bluescope도 지난 11월 미국 고철기업 North Star Steel Mill을 인수했다.
근래 몇 년간 미국 철강기업은 철강산업 호황을 맞으며 충분한 자금력을 확보한 상태로 평가되고 있으며, 반대로 가족경영으로 운영되는 미국 고철기업은 고령화 현상이 발생하면서 활발한 인수합병의 배경이 되었다. 미국 중서부 위치한 컨설팅 관계자는 KOTRA 시카고 무역관과의 인터뷰에서 “피인수기업인 고철기업 입장에서도 가족경영으로 이어온 오랜 사업을 현금화하기 위해 지금이 큰 금액에 기업을 매각할 수 있는 최적기”라고 전했다.
철강기업 탄소배출량, ESG 지표와 직결돼
미국 기업이 적극적으로 전기로 확장과 고철기업 인수에 나서고 있는 이유는 세계적으로 철강산업이 온실가스 배출의 주범으로 지목되면서 철강 생산 시 발생하는 탄소 배출이 ESG 지표와 직접적으로 연계됐기 때문이다.
Citi, Goldman Sachs, ING, Societe Generale, Standard Chartered, UniCredit 등 6개의 글로벌 투자은행은 2021년 철강산업의 탈탄소화에 대한 공동 행동 표준을 개발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들 은행은 철강산업의 기후 목표에 관한 공평한 경쟁의 장을 만들고 탈탄소화를 지원하는 표준을 만들고자 한다. 나아가 2050년까지 세계 철강 제조기업들이 탄소배출량을 0으로 만들 방안을 모색한다.
한편, 철강산업 분석업체 Crugroup의 연구에 따르면, 미국 철강업계는 다른 국가에 비해 철강 생산 톤당 탄소 배출량이 적은 편인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산업이 다른 국가에 비해 ESG 지표 경쟁력을 갖춘 이유는 전기로 생산방식의 비중을 높였기 때문이다. 또한 미국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US Steel이 2050년까지 탄소 직접 배출량을 0으로 만들겠다는 목표 발표로 철강업계의 이목을 끌었다.
시사점
미국 철강기업 관계자는 KOTRA 시카고 무역관과의 인터뷰에서 "미국 제철소가 전기로 생산 용량을 확대하고 있어 고철 중에 특히 프라임 스크랩 공급난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 철강기업들이 앞다퉈 고철 사용을 확대하고 있는 추세다. 폭증하는 고철 수요에 일부 국가에서는 최근 고철 수출 제한까지 나서고 있어 고철 물량 확보를 위해서는 웃돈을 줘야하는 상황인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는 고철 자급률은 85% 수준으로 부족한 물량은 미국, 일본, 러시아 등에서 공수해온다. 일본 최대 고로 중심의 철강기업 일본제철은 전기로 중심의 생산체제로 전환을 준비 중이며 러시아 정부는 자국 철강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고철 관세를 4배 이상 올리면서 고철 해외 반출을 제지하고 있다. 세계 1위 철강 생산국 중국도 전기로 생산 비중을 현재 10%대에서 2030년까지 34%까지 확대할 계획이라 지속적으로 고철 수입을 늘리는 추세다. 아직 미국의 고철 수출제한은 없으나 폭증하는 고철 수요로 미국 철강기업을 중심으로 고철 수출 규제를 건의하는 목소리가 높다. 다른 국가에서 고철 물량 확보에 나서는 상황에서 우리나라 고철 최대 수입국인 미국까지 수출 통제에 나선다면 철강업계에 타격이 올 수 있어 진행되는 상황에 대한 모니터링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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