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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어닫기최초의 에너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류 한계를 극복하고 발전을 이룬 역사와 에너지 사용으로 인해 직면한 위기 및 해결방안을 알아봅시다.
네덜란드의 명물 풍차는 자연을 이용해 자연을 극복하기 위한 인류 노력의 산실이다. 바람에너지를 활용해 낮은 곳의 물을 걷어내는 한편, 나무를 자르고 방아를 찧는 등 다양하게 활용됐다 태양, 바람, 물 등 자연이 가진 에너지는 예로부터 인류에게 큰 자원이 됐다.
인류는 자연의 힘을 이용하며 좀 더 적은 노동력으로 큰 효과를 얻을 수 있었고, 이는 인류 문명 활동의 근간이 됐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비가 오는 패턴을 그 누구보다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 나일강이 주기적으로 범람하며 주변 토지를 비옥하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태양열 에너지로 인한 물의 순환은 봄마다 에티오피아 고원지대에 계절성 폭우를 내리게 했고, 이집트인들은 그로 인한 범람을 예측하기 위해 천문학과 수학이 발달시키며 기원전 몇 천 년부터 찬란한 문명을 이룩할 수 있었다.
또 다른 태양열 사용 사례로 그리스의 대학자 아르키메데스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자신의 고향 시라쿠사를 지키기 위해 거울로 태양열을 모아 로마의 군함을 태웠다는 것이다.
한편 7세기 경 페르시아 지역에서 개발된 풍차는 바람의 힘을 통해 낮은 곳에 있는 물을 퍼올리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오늘날 네덜란드의 상징이 풍차인 이유 역시 오랜 간척사업과 연관이 깊다. 풍차는 이밖에도 나무를 자르고 방아를 찧는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됐다. 바람의 힘을 이용한 또 다른
사례로 윈드캐처가 있다.
중동, 북아프리카 등지에서 주로 사용된 윈드캐처는 이름 그대로 바람을 잡아 냉방을 하는 건물이다. 바람구멍으로 들어온 공기가 건물 내부를 순환하며 더운 열기를 몸에 품으면, 부력에 따라 위로 올라가면서 배출 구멍으로 빠져나가게 된다. 그 자리는 뒤이어 들어온 바람이 다시 채운다.
물의 힘을 이용하는 수차 역시 활용도가 높았다. 우리나라 역시 약 5, 6세기 이전부터 수차를 활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방아에 연결해 곡식을 빻거나 맷돌을 통해 가루를 내는 등 다양하게 사용했으며, 관개·양수용으로도 활용됐다고 전해진다.
서양에서는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 수차를 발명해 관개용으로 활용한 것으로 추정되며, 로마에서도 수차를 만들어 사용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특히 현재 시리아 하마 지역에서 수차를 관개용으로 적극 활용했는데, 오늘 날에도 엄청난 크기의 수차 17개가 남아 관광 명소로 각광받고 있다. 이러한 수차·풍차 등은 모두 자연의 힘을 체계적으로 활용해 자연을 극복하고자 했던 인류 노력의 산물이다. 덕분에 인류는 농사에 필요한 물을 필요한 곳에 보급했고, 낮은 지대의 물을 제거해 땅을 넓혔으며, 덥고 건조한 고원지대의 열기를 견딜 수 있었다.
납, 구리 등 저렴한 금속을 금으로 바꾸기 위한 다양한 시도는 증류, 염색, 기화 등 다양한 실험을 통해 화학의 발전을 이끌었다. 이러한 지식을 바탕으로 화석연료에 대한 정제 지식이 쌓였으며, 이후 화석연료 확산의 이론적 근거가 됐다.
자연의 힘을 알차게 이용하며 자연을 극복했던 인류는 오래전 지구상에 서식했던 유기체로부터 에너지를 얻기 시작했다. 석유, 석탄 등 오늘 날까지 널리 사용되는 화석연료다.
이런 화석연료는 인류 문명의 필수품인 불을 기존 연료(나무, 풀)보다 더 강하게, 더 오래 지속시킬 수 있게 하는 유용한 존재다.
화석연료는 또한 쇠를 가공하는 데 중요한 탄소를 공급하는 역할까지 담당하곤 했다.
화석연료 사용의 역사는 기원전 315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그리스 철학자 데오프라테스가 남긴 문헌에 북부 이탈리아에서 캔 석탄을 대장간에서 사용했다는 내용이 있다.
중국에서는 4세기부터 석탄이라는 단어가 사용됐으며, 12세기 송나라에서 석탄에 대한 세금을 부과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하지만 오랜 시간 동안 화석연료는 그렇게 각광받는 에너지원은 아니었다. 대체재인 나무는 보다 구하기도 쉽고, 계속 재생되며, 각종 건축재나 도구재로서도 활용 범위가 넓다. 과학적 정제과정을 거치지 못한 화석연료의 조악한 품질 역시 큰 문제였다. 예를 들어, 정제 없이 자연에서 채취한 상태 그대로의 광유는 좋지 않은 연기와 냄새를 내뿜는다. 이를 통해 밝힌 불빛 역시 오늘날 조명과 같이 밝지 않다. 여기서 등장하는 것이 연금술이다. 고대 이집트, 그리스·로마를 거쳐 아랍으로 전수된 연금술은 화학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화학을 뜻하는 ‘chemistry’가 연금술(alchemy)로부터 유래한 것만 봐도 그 영향력을 알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납, 구리 등 저렴한 금속을 금이라는 다른 금속으로 정련하기 위한 갖은 시도들이 화학적 실험의 기틀을 잡았다는 것이다. 증발을 통해 액체를 분리하는 증류, 색을 변화시키는 염색, 액체를 거치지 않고 고체에서 바로 기체로 형상이 변화는 승화와 같은 여러 물리·화학적 변화 과정들이다.
인류는 연금술을 통해 이러한 실험에 대한 이론적 근거와 실증 노하우에 가까워졌다. 연금술은 결과적으로 화석연료 정제에도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으로 9세기 활동한 페르시아의 대학자 자카리야 알 라지의 저서 ‘비밀의 서’에 등유를 정제하는 방법이 실려져 있다. 연금술사들이 기반을 닦은 증류법은 오늘날까지 석유를 정제하는 기본 원리로 알려져 있다.
이후 이러한 지식을 바탕으로 1709년 마침내 영국의 에이브러햄 다비가 코크스(cokes) 제철법을 개발하기에 이르며, 이는 증기기관 발명과 함께 산업혁명을 이끄는 주역이 됐다. 석유 역시 비중, 끓는점 등에 대한 연구가 보다 체계화되면서 중유, 경유 등 다양한 분류 방법과 활용법이 연구되고, 이를 바탕으로 그 활용이 점차 늘어날 수 있었다.
울창한 삼림도 늘어만 가는 인류의 목재 사용을 모두 감당할 수는 없었다.
그 대안으로 주목받게 된 것이 바로 화석연료다. 인류는 나무, 가축과 같은 생물자원서부터 바람, 불, 물 등의 자연자원을 적절히 활용하면서 찬란한 문명을 이룩할 수 있었다.
추위, 더위와 같은 자연의 피해를 이겨낼 수 있었고, 많은 생산량을 바탕으로 도시를 건설하고 다른 동물들보다 우위에 설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한계에 이르기 시작했다.
발달한 문명으로 인한 급격한 인구 증가는 자연자원의 고갈로 이어진 것이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나무였다. 울창한 숲자원은 인류에게 끝없는 보고로 느껴졌지만, 이내 한계에 도달했다. 많은 사람들이 난방을 위해 벌채를 늘렸고, 식량이 더 필요한 인구는 삼림을 줄여 농지를 넓히는 선택을 했다. 장거리 항해가 늘어나며 선박 건조를 위해 사용되는 목재의 양도 증가했다.
냉병기를 만들기 위한 불길 역시 목재가 필요했다.
이에 영국을 중심으로 벌채 규제를 시작했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목재 자원이 귀해지면서 산림 소유권을 둘러싼 분쟁도 늘어갔다. 15세기 대비 17세기 목재의 가격은 무려 2.5배에 이르렀으니, 말 그대로 귀한 몸이 된 것이다.
이에 사람들은 목재를 대체해 열에너지를 만들어 줄 소재를 찾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공해, 채굴·보관·운송의 까다로움 등 여러 이유로 천시 받았던 석탄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영국의 독특한 정치 지형도 석탄 확산에 한 몫을 했다. 1534년 영국 헨리 8세가 시행한 교회 수장령(영국 교회를 관리하는 모든 권한을 교황이 아닌 국왕에게 부여 하는 법률)이다.
이렇게 여러 이유로 목재는 구하기 힘들어지고, 반대로 석탄 활용은 점차 늘어나게 된다. 17세기에 이르면 대부분 평민은 물론 콧대 높은 귀족들마저 난방용으로 석탄을 사용할 정도다. 석탄이 대세로 자리 잡게 되면서 그 활용을 위한 기술개발도 활발해 진다. 그중 1709년 에이브러햄 다비가 개발한 코크스(cokes) 제철법은 화석연료의 활용을 더 수월하게 했고, 마침내 1769년 제임스 와트가 증기기관을 발명(정확히는 개량)하며 인류는 화석연료 활용 그리고 인류 문명에 있어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