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활한 우주를 떠도는 우주선에 제공할 에너지는?
[SF 작품 속 에너지 ⑨] 上. 우주 속 작용-반작용 법칙
[SF 작품 속 에너지 ⑨] 上. 우주 속 작용-반작용 법칙
고호관 작가
고호관 작가는 서울대학교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에서 과학사를 전공하고 『과학동아』, 『어린이과학동아』, 『수학동아』에서 기자로 활동했습니다. 지금은 기자의 삶을 마무리하고 SF 작가이자 과학 저술가로 왕성한 작품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하늘은 무섭지 않아』로 제2회 한낙원과학소설상을 받았으며, SF 앤솔러지 『아직은 끝이 아니야』(공저)와 『우주로 가는 문, 달』, 『술술 읽는 물리 소설책 1~2』, 『하늘은 무섭지 않아』, 『우주선 안에서는 방귀 조심!』 등을 집필했습니다. 이와 함께 『수학 없는 수학』, 『진짜진짜 재밌는 곤충 그림책』, 『아서 클라크 단편 전집 1960-1999』, 『링월드』, 『신의 망치』, 『SF 명예의 전당 1: 전설의 밤』(공역), 『머더봇 다이어리』 등을 번역했습니다. |
SF에서 흔히 나오는 모습 중 하나가 우주선을 타고 광활한 우주 공간을 탐험하는 것입니다. 이런 맛이 SF를 즐기는 이유이기도 하지요. 그런데 우주선이 움직이는 데는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엄청나게 넓은 우주를 생각하면 그것도 엄청난 양의 에너지가 필요하겠지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는 많은 작가의 숙제였습니다.
우주에는 발을 디딜 땅이나 헤치고 나갈 물과 공기가 없습니다. 허공에 둥둥 뜬 상태에서는 사실상 움직일 수 있는 방법이 한 가지밖에 없습니다. 뉴턴의 운동 제3법칙인 작용-반작용의 법칙을 이용하는 겁니다.
로켓을 날리는 원리인 작용-반작용의 법칙. 로켓이 무언가를 뒤로 내보내면, 그 반작용으로 로켓이 앞으로 날아갑니다. © 삼성디스플레이
작용-반작용의 법칙은 “모든 작용에 대해 크기는 같고 방향은 반대인 반작용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A라는 물체가 B라는 물체에 힘을 가하면, B 물체도 A 물체에 크기는 같고 방향은 반대인 힘을 가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공을 던지면, 우리도 반대 방향으로 똑같은 힘을 받습니다. 다만 우리 발바닥과 땅의 마찰력이 커서 우리는 뒤로 움직이지 않을 뿐이지요. 잔잔한 물 위에 뜬 배를 탄 채로 돌을 계속해서 던진다면 배가 돌이 날아가는 반대쪽으로 서서히 움직이는 걸 볼 수 있을 겁니다.
로켓이 바로 이 원리를 이용합니다. 연료를 태워 지상을 향해 가스를 분출하면 로켓은 반대쪽으로 힘을 받아 상승합니다. 우주에 올라간 우주선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딘가로 움직이려면 반대쪽으로 뭔가를 분출해야 합니다. 우주 유영을 하는 우주인도 추진제를 내뿜는 방식으로 원하는 곳으로 움직입니다. 우주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에서 이런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때로는 응급 상황에 소화기 같은 물체를 이용하기도 하지요. 영화 <마션>에서는 우주복에 구멍을 뚫고 공기를 내뿜어 움직이는 모습이 나오고,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시리즈인 <러브, 데스+로봇>의 에피소드 ‘구원의 손’에서는 위기에 처한 우주비행사가 자신의 손을 잘라 던져서 목숨을 구합니다.
우주 탐사선이나 일부 인공위성도 같은 원리를 이용해 움직입니다. 엔진의 종류는 조금 다릅니다. 지구 중력권을 탈출해야 하는 로켓은 강력한 힘을 내기 위해 연료를 태울 때 생기는 고온, 고압의 기체를 분사구로 내뿜습니다. 한편 오랫동안 작동해야 하는 우주선은 이온 엔진을 쓰곤 합니다. 이온 엔진은 제논이나 아르곤 같은 추진제를 이용합니다. 제논과 같은 원소를 양이온과 전자로 분리한 뒤 자기장으로 무거운 양이온을 가속해 내뿜는 방식입니다. 이온 엔진의 작동에는 전기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1998년 발사된 NASA의 탐사위성 ‘딥 스페이스’. 이온 엔진을 이용하여 소행성과 혜성을 탐사했습니다. © NASA
이온 엔진은 로켓 엔진보다 힘이 약해 지구 중력권에서 빠져나오는 데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오랫동안 꾸준히 가속할 수 있기 때문에 충분한 시간 동안 가속하면 빠른 속도로 우주선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영화 <스타워즈> 시리즈에 등장하는 전투기 ‘타이 파이터(TIE fighter)’의 TIE가 트윈 이온 엔진(Twin Ion Engine)의 약자입니다. 사실 이온 엔진은 힘이 약해서 영화에서처럼 전투기가 빠른 속도로 방향을 바꾸며 날아가게 할 수는 없습니다.
영화 <스타워즈> 시리즈를 상징하는 전투기 ‘타이 파이터’. 양쪽의 방패같은 부분이 이온엔진 방열판이라는 설정입니다.
물론 이온 엔진으로는 영화에서처럼 민첩한 움직임은 불가능하지요. © Fathead
여기까지는 현실에서 구현이 된 방법이고, 이제부터는 아직 실현이 되지 않은 방법을 이야기해보겠습니다. SF에 흔히 등장하는 우주선 엔진으로 원자력을 사용하는 것이 있습니다. 핵분열 또는 핵융합을 이용하는 것이지요. 안전성을 떠나 실현이 된다면 장점이 있습니다. 화학연료보다 적은 양만 사용해도 된다는 것입니다. 먼 거리를 갈 때는 실어야 하는 연료의 양도 엄청나게 많아지므로 연료를 적게 실어도 된다면 아주 유리할 겁니다.
연료를 싣는 게 너무 부담이 되니 아예 연료를 자체 수급하자는 아이디어도 있습니다. 1960년 물리학자 로버트 버사드가 제안한 버사드 램제트 방식은 수소 핵융합을 이용해 우주선을 추진하지만 연료를 미리 싣지 않습니다. 그 대신 우주 공간에 있는 수소를 이용합니다. 우주 공간은 진공에 가깝지만, 1입방미터에 한두 개꼴로 수소 원자가 있습니다. 이 수소를 모아서 핵융합을 일으키는 겁니다.
버사드 램제트 우주선의 상상도. 오른쪽의 넓은 부분이 우주공간에 있는 수소 입자를 빨아들이는 장치입니다. © Initiative for Interstellar Studies
버사드 램제트 방식은 연료를 많이 실을 필요가 없어서 장거리 여행에 매우 유리합니다. 사실상 연료가 무제한인 셈이지요. 미국의 SF작가 폴 앤더슨의 「타우 제로」를 통해 대중적인 인지도를 얻었는데요, 타우 제로는 버사드 램제트 방식으로 움직이다가 고장이 나는 바람에 그만 가속을 멈추지 못하는 상황에 처한 우주선 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 작품입니다.
폴 앤더슨의 소설 「타우 제로」의 프랑스어판 표지.
버사드 램제트의 원리를 소설의 중요한 장치로 도입했습니다. © Le Bélial'
그런데 에너지를 무제한으로 얻을 수 있다고 다는 아닙니다. 우주 공간에서 움직이려면 에너지 말고도 다른 것이 필요합니다. 바로 추진제입니다. 추진제는 작용-반작용 법칙을 이용하기 위해 가고자 하는 방향 반대쪽으로 내뿜는 물질입니다. 화학연료를 사용하는 로켓은 연료 자체가 추진제여서 별도로 추진제를 실을 필요가 없습니다. 이온 엔진의 경우 제논 같은 추진제가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