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를 생산하는 싱크대가 있다?!
가정에서 에너지를 가장 많이 소비하는 곳은 주방이죠. 이케아 같은 거대 가구 기업 역시 다양한 과학적 아이디어를 동원한 미래의 ‘스마트 키친’을 상상해보고 있는데요, 흥미롭게도 미래 주방은 에너지 소비 공간이 아니라 에너지 생산 공간이 될 수 있습니다.
싱크대에 나노 물질을 도포, 압력으로 전기를 생산한다
미래에는 대리석 같은 석재를 사용하는 싱크대, 식탁, 벽 등을 통해 전기를 생산하고 저장하는 세상이 올 것 같습니다. 가정에서 요리나 부엌일을 하며 생산한 전기로 스마트 조명이나 스피커, 온도 조절기 같은 장치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다는 말이죠.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국민대학교 응용레이저기술 연구실 강봉철 연구팀이 석재에 에너지를 스스로 발전하고 저장하는 ‘마이크로 슈퍼커패시터’를 도포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슈퍼커패시터’는 에너지를 저장한 뒤 필요할 때 고출력 전기를 보낼 수 있는 에너지저장장치를 말하는데요, 배터리는 전기로 화학 반응을 일으켜 이온의 화학적 에너지를 저장하는 장치인 반면 슈퍼커패시터는 이온의 물리적 에너지를 저장하는 장치입니다. 그중 ‘마이크로 슈퍼커패시터’는 초고용량 축전지인 슈퍼커패시티를 초소형화한 것으로 가혹한 충격에도 잘 견디며 4,000번이 넘는 충전과 방전에도 에너지 저장 용량이 잘 유지되죠. 압력으로 전기를 생산하는 압전소자와 결합된다면 주방일로 에너지를 만들고 싱크대에 이 에너지를 저장한 뒤, 인덕션을 켜거나 싱크대에 휴대폰을 두고 충전이 가능한 꿈같은 일이 실현될 수 있는 것입니다.
석재는 건축물이나 주방 인테리어에 흔히 사용되는 재료이지만 그 표면이 매끄럽게 연마되어 있어 전기적 재료를 부착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특히 마이크로 슈퍼커패시터처럼 우수한 전력 저장 능력을 갖고 있으며 빠른 충전 및 방전 속도를 가진 소형 에너지저장장치를 대리석에 도포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죠.
앞으로는 부엌일을 하거나 물만 사용해도 소소하게 전기를 생산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 kitchen and bath news
강봉철 교수 연구팀은 레이저 조사를 이용해 이런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이루어 냈습니다. 먼저 연구팀은 빗살 모양처럼 구조화된 산화구리 나노 입자 용액을 대리석 표면에 입혔습니다. 그런 다음에 근적외선 레이저를 이 나노 입자에 쪼여서 빈 공간이 많고 전기도 잘 전달하는 구리 전극을 대리석 표면에 생성했습니다. 이 전극 한 쪽에는 산화망간을 입히고 다른 한 쪽에는 산화철을 입혀서 ‘마이크로 슈퍼커패시터’를 만들었지요. 여기에 고분자 용액 전해질 층을 만들고 전극을 연결하자 전기를 충전할 수 있었지요. 연구진은 충전된 장치에 LED를 연결해서 불빛을 밝히는 데 성공했습니다. 가정에서 에너지를 가장 많이 소비하는 곳인 부엌이 도리어 에너지 생산구역이 된다니, 신기하지 않나요?
물을 사용하면 전기가 만들어진다?
미래의 ‘스마트 주방’
흐르는 물로 전기를 생산하는 기술도 개발 중입니다. 물방울이 흐를 때 발생하는 움직임을 전기에너지로 저장할 수 있는 ‘에너지 압전소자’가 그것이죠.
유리기판으로 만든 전력변환 장치 위에 물방울을 떨어뜨리면 물방울의 흐름으로 양전하와 음전하의 변동이 생기고,
이 같은 변동을 이용하여 전기가 생산됩니다. © 서울대학교
2014년에 서울대학교 연구진은 압력, 마찰을 전기로 변환시키는 기술에서 더 나아가 물의 움직임을 이용하는 기술을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40μL(마이크로리터) 가량인 한 방울의 물로 LED 전구 3~4개를 켤 수 있는 최대 0.42mW의 전기를 생산했으며, 이를 휴대폰 배터리보다 작은 용량의 에너지 저장 부품을 통해 저장까지 했는데요, 상용화된다면 손을 씻거나 설거지하고 버리는 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물의 움직임을 이용해 전기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습니다.
2019년에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는 소량의 물로 전기를 생산하는 친환경 발전기를 개발했습니다. 연구팀은 전도성 탄소입자를 입힌 면섬유 한쪽에 소량(0.15㎖)의 물을 떨어뜨리면 물속의 수소 이온이 젖은 쪽에서 마른 쪽으로 이동하면서 전류가 흐른다는 사실을 발견했는데요, 젖은 영역과 마른 영역 사이에 수소 이온 흡착에 의한 전압의 차이가 생기면서 소량의 전기에너지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탄소입자가 코팅된 면섬유에 염화칼슘을 묻히면 습도 20% 이상 환경에서는 자발적으로 수분을 흡착해 전력이 지속적으로 유지된다는 것도 발견했습니다. 이렇게 개발한 자가발전기를 이용해 0.15㎖의 물로 20㎽(밀리와트)급의 LED 전구를 켜는 데 성공했습니다. 부엌에는 항상 물이 있기 때문에 이 기술을 싱크대에 적용한다면 24시간 내내 전기를 생산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케아의 ‘컨셉트 키친 2025’가 상상한 미래 주방에 최신 기술이 도입된다면 우리 모두 전기 생산자가 될 수 있겠지요. © IKEA
이러한 기술로 부엌에서 만들어내는 전력이 물론 많은 양은 아닙니다. 소소하게 얻는 전기로 모바일 기기 충전 정도나 하는 게 고작일 것 같은데, 부엌에서 생산한 전기가 무슨 소용이 있냐고요? 그 해답은 신기술이 적용된 미래 주방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이케아는 ‘컨셉트 키친 2025’라는 이름으로 차세대 부엌의 청사진을 제시했습니다. 여기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바로 ‘키친 테이블’입니다. 키친 테이블 위 천장에는 카메라와 프로젝터가 달려 있습니다. 카메라의 센서는 테이블 위에 놓인 물체를 감지하며, 프로젝터는 ‘스마트 라이트(smart light)’를 비춰 테이블 위에 정보를 표시하죠. 테이블 표면 바로 아래에는 유도 코일이 들어갑니다. 서로 네트워크로 연결된 이 시스템은 물체와 움직임을 식별하고, 테이블 바닥에 화면을 비춥니다. 테이블에 식재료를 올려놓으면 영양성분, 조리법을 보여주고 유도 코일 조리용으로 설계된 식기로 곧바로 탁자 위에서 조리를 할 수 있습니다. 검색엔진과 조리대가 통합된 시스템이지요. 여기에 주방용 발전시스템이 결합된다면 이전보다 적은 에너지를 사용하고도 훨씬 편리하게 요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요리가 쉽고 즐거워지면서도 지구의 환경도 살리는 주방, 생각만 해도 근사하지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