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녹색 건축 ②
1930년대와 현재가 공존하는 상하이 부티크 호텔 워터하우스
상하이 부티크 호텔 워터하우스의 외관. 과거와 현재가 묘하게 공존하는 모습입니다. © Neri&Hu Design & Research Office
이집트의 피라미드는 인간 문명의 위대함과 덧없음을 동시에 보여주는 상징물이라고들 하지요. 인간의 손으로 만든 건축물이 수천 년 동안 무너지지 않고 유지됐다는 점에서는 인간의 놀라운 능력을 보여주지만, 한때 하얀 대리석으로 덮여 눈부시게 빛나던 건축물이 그저 황량한 바위산처럼 남은 모습을 보면 아무리 훌륭한 건축물이라도 세월이 흐르면 무너지고 잊히기 마련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건물을 만든 사람처럼, 건물도 영원한 세월을 버티지는 못하고 언젠가는 ‘죽음’을 맞을 운명인 셈이죠.
파라오의 무덤이라서 각별히 공을 들인 피라미드도 그러한데 우리가 요즘 짓는 건물은 오죽할까요. 대체로 근현대 건설된 건물의 수명은 100년을 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튼튼하게 지었더라도 세월이 지남에 따라 구조적인 결함이 생기기도 하고, 환경이 변하면서 종전의 방식대로 사용하지 못하게 되기도 하니까요.
그런데 사람의 장례식에 적지 않은 비용이 드는 것과 마찬가지로 건물의 장례식에도 많은 비용과 에너지가 들어갑니다. 건물을 안전하게 철거하고 폐자재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의 양도 많지요. OECD의 자료에 따르면 건물 신축과 철거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배출량만 연간 전 세계 탄소배출량의 10%에 달한다고 합니다. 이는 건물을 오래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에너지나 탄소배출 양면에서 이득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최근 세계적으로 건설부터 철거에 이르는 ‘전 주기’에 사용되는 에너지를 ‘계량화’하고 이를 바탕으로 도시계획을 수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공감대를 얻고 있습니다. 특히 오래된 건축물이 지금도 얼마든지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도록 개량하는 ‘레트로핏’이 주목받고 있지요. 에너지와 환경 문제로 고심하는 중국에도 죽어가던 건물을 되살린 사례가 큰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것도 버려진 창고나 다름없던 폐건물을 고급 호텔로 탈바꿈시킨, 놀라운 변신이죠.
1930년대 중국 상하이는 명실공히 동양의 중심이었어요. 세계적인 항구도시로 명성을 떨쳤고 금융의 중심지였습니다. 세계 각국에서 외국인들이 몰려왔고 중국 각지에서도 많은 사람이 모여들면서 돈과 활기가 넘치는 도시였습니다. 그래서인지 당시 상하이의 모습은 중국인에게 남다른 향수를 자극하는 요소이기도 합니다.
1930년대의 워터하우스 호텔. 아직 호텔이 되기 전, 이 건물은 한동안 창고 등으로 사용되어 거의 방치되다시피
했습니다. © Neri&Hu Design & Research Office
당시의 상하이의 흔적을 느껴보고 싶다면 상하이 사우스 와이탄 지역 Cool Docks 개발 지역에 있는 ‘상하이 부티크 호텔 워터하우스’에 묵어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이 호텔은 원래 1930년대부터 다양한 용도로 사용된 건물입니다. 부두 창고, 보일러실 등으로 허름하게 상하이의 흥망성쇠를 함께 견뎌온 건물이지요.
싱가포르 출신인 이 건물의 소유자는 2008년 세계적인 디자인 회사 ‘네리 앤 후 디자인 앤 리서치 오피스(Neri&Hu Design & Research Office)’와 함께 2년에 걸쳐서 이 낡은 건물을 호텔로 변신시켰습니다. ‘네리 앤 후’는 중국 건축계의 신성으로 떠오르는 집단으로 린든 네리(Lyndon Neri)와 아내 로잔나 후(Rossana Hu)가 만든 회사입니다. 우리나라 강남구 도산대로에 있는 설화수 플래그십을 디자인한 곳으로 유명하죠.
오랜 세월의 흔적이 묻은 벽면과 창을 통해 보이는 객실의 깨끗한 모습은 과거와 현재의 대비를 보여줍니다. 오래된 건물의 리모델링이 주는 묘미가 바로 여기에 있지요. © Neri&Hu Design & Research Office
‘네리 앤 후’는 허름한 건물을 허물고 새롭게 건축하기보다는 과거의 유산을 최대한 남기는 방식을 선택했습니다. 건물에 켜켜이 쌓인 역사성을 온존하면서 현대적인 색채를 가하는 방식이지요. 이러한 철학에 따라 건물 리모델링에도 최소한의 자원만 투입했습니다. 콘크리트 구조틀과 벽돌, 창틀 같은 뼈대는 그대로 두고 외관 파사드에 살짝 덧칠만 하는 방식이었죠.
워터하우스 호텔의 로비. 요즘 유행하는 ‘인스타 감성’이 물씬 묻어나옵니다. 노출된 콘크리트와 표면을 의도적으로 드러내어 완성과 미완성의 묘한 경계선 느낌을 주는 최신 트렌드의 시발점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 Neri&Hu Design & Research Office
그러다 보니 얼핏 보면 그냥 오래된 건물로 느껴지기도 하고 심지어 아직 완공되지 않고 공사가 진행 중인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외관뿐만 아니라 계단이나 복도도 예스러운 콘크리트 속살이 그대로 드러나 있어요. 여기에 화려한 네온사인을 장식해 뭔가 이질적이면서도 독특한 느낌을 보여줍니다. 호텔 로비에 걸려있는 하얀색 샹들리에는 낡은 벽면과 함께 더욱 드라마틱한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총 19개 객실은 4개 타입으로 구분하는데 외관과는 다르게 모던하게 꾸며져 있어요. 가구는 콘스탄틴 크르치치(Konstantin Grcic), 탐 딕슨(Tom Dixon), 아르네 야콥센(Arne Jacobsen), 한스 웨그너(Hans J. Wegner), 핀 율(Finn Juhl) 같은 유명 디자이너들의 작품들을 선택해 호화로움을 더 했습니다.
호텔 객실은 현대적인 디자인으로 깔끔하게 꾸며졌습니다. © Neri&Hu Design & Research Office
이 호텔의 가장 큰 장점은 상하이가 지닌 역사의 흔적을 고스란히 보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과거의 건물을 최대한 활용하면서도 현대적인 세련미를 잃지 않은 모던한 디자인, 리모델링 과정에서 지켜져 온 ’버리지 않고 재활용한다‘는 철학은 이 호텔의 가치를 높입니다. 역사가 현재로 흐르는 공간을 만들어 시간을 초월한 공간을 만든 셈이죠.
루프탑 테라스는 주변 환경과 완전히 동떨어진, 고즈넉한 분위기를 제공합니다. © Neri&Hu Design & Research Office
이 호텔을 리노베이션한 린든 네리는 2018년 우리나라에서 열린 강연회에서 “지역을 반영한 건축물이 만들어지면 주민들이 무척 자랑스러워한다”라며 “사람들이 돌아오게 만드는 역할도 한다. 도시로 떠난 손녀가 할아버지의 고향으로 돌아오는 것이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면서 역사, 추억 같은 지역성이 깃든 건축물이 바로 지역과 미래를 살릴 수 있다는 자신의 건축 철학을 강조했습니다. 그의 철학에 가장 어울리는 건축물이 바로 ‘상하이 부티크 호텔 워터하우스’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한편으로 린든 네리의 건축 철학은 최근 주목받는 그린 리모델링에도 시사점이 큽니다. 상하이 부티크 호텔 워터하우스는 을씨년스러울 만큼 낡은 상업용 건축물이라도 얼마든지 고부가가치 건물로 재탄생한 사례인 동시에, 낡은 건축물에 최소한의 손만 대고도 경제성과 의미성을 모두 잡을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린 리모델링이 단지 최소한의 비용으로 낡은 건물의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데 그치지 않고 지역의 역사와 삶을 보존하는 인문학적인 가치도 크다는 사실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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